옛날부터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나 물체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였다. 다수가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이 통념화되고 상징성을 띄게 된다. 상징을 가지게 된 물체는 미술작품에 등장하며 작가의 의도를 은근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오늘은 이러한 상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상징이야기
가지/잔가지
생명의 나무와 풍요는 한 개의 가지로 나타낼 수있기 때문에 신부의 상징이다. 집의 입구를 가지로 장식하는 것이나 '산사나무의 가지를 가지고 돌아옴.' 즉 5월 1일에 숲에서 산사나무의 가지를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봄에 치르는 풍요의례〈오월제〉이다. 황금가지 는 현세와 내세를 잇는 것, 천계로 가는 여권, 이니시에이션, 마법의 가지이며, 그 가지 때문에 영웅 아이네이아스는 명계를 빠져나와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굵은 가지를 자르는 것은 왕의 죽음을 의미한다.굵은 가지는 또한 지팡이, 막대기, 노의상징과 연관된다
닻
닻은 희망, 지조, 안정, 평정의 상징이다. <엉클어진 닻 Foul anchor〉은 배와 돛대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여자(보호자로서 달 모양의 배)와 남자(남근 모양인 막대기나 돛대)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닻과 돌고래>의 상징에서는 닻은 느림, 돌고래는 빠름을 나타내며, 이 둘은 함께 중용의 덕 또는 '빨리 하되 차근차근히 하라'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초기 크리스트교 미술에서는 닻이 십자가를 위장한 형태로서 희망을 나타내기도 했다. 해양국에서는 닻이 안전, 무사함, 행운의 상징이다.
대나무
대나무는 우아함, 정조, 휘기는 하지만 오래 버티는 힘, 유연성,훌륭한 교육, 오래 지속되는 우정 (항상 푸르기 때문), 장수와 건강한 노년 등을 뜻한다. 동양에서는 장수, 자식의 효도, 〈겨울의 세벗三友〉으로 소나무, 매화와 함께 겨울을나타낸다. 대나무는 품행이 바르고 성정이 곧으며 속마음은 겸허한 군자의 상징이다. 대나무와 참새는 우정을, 대나무와 학은 장수와 행복을 뜻한다.
도토리
도토리는 북유럽과 켈트어권에서 생명, 다산, 불사의 상징이다. 도토리(정확하게는 떡갈나무)는 게르만의 천둥신 토르에게 바쳐쳤고,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이다.
독사
독사는 악의 상징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악마의 네가지 양상 중 하나로 귀머거리 독사는 생명의 말씀과 교의에 귀를 막고 있는 죄인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풍요, 빛을 뜻한다. 자작나무는 마녀로부터 보호하고 악령을 쫒는 힘이 있다. 따라서 중죄인과 미치광이를 자작나무 가지로 때렸다.
황소
황소는 상반되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자연에서는 남성원리이며, 모든 천공신에게 바치는 태양의 생성력이다. 풍요, 남성적 출산력, 왕의 위엄, 왕을 나타낸다. 그러나 달에 속하며, 여신 아스타르테나 여신 에우로파같은 달의 여신을 태우면 대지, 자연의 습윤력을 상징한다. 이때의 황소는 남성적이며, 동물적인 본성이 길들여졌음을 나타낸다. 누군가를 태우는 황소나 전차를 끄는 황소는 태양에 속하는 전사의 상징이며, 천공신, 폭풍의 신, 태양신과 연관된다. 황소의 울음소리는 벼락, 비, 풍요를 뜻한다.
황소는 생산력의 구체적인 형상으로서 태양, 비, 폭풍, 벼락, 번개를 가져오는 힘과 관련되기 때문에 건조와 습윤의 두 원리와 관계를 맺는다. 황소의 모습을 한 천공신과 기후의 신이 아주 오래전부터 기록되었고, 배우자인 여신이 함께 나타나는경우가 많다.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나 황소 공양은 아티스 신과 미트라 신숭배에서 행하며, 고대의 신년제에서도 있었다. 수메르와 셈에서 치러지는 모든 제사와 의례에서 황소의 상징적 의미는일관되게 나타난다. 황소 인간은 대개 중심과 보물, 문지방을 지키는 수호자이며, 악을 쫓고, 액을 막아준다.
황소의 머리(부활원리가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는 희생과 죽음을 의미한다. 신년에 황소를잡는 것은 겨울의 죽음과 창조적 생명력의 탄생을 의미한다.
출처 그림으로보는 세계문화상징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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