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오스트리아의 화가인  에곤 실레는 과감하고 에로틱한 인체 묘사, 거칠고 뒤틀린 터치, 자폐적인 자화상으로 우리에게 독특한 인상을 주는 화가이다. 내재된 욕망을 다룬 그의 그림에 대해 알아보자.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화가 에곤실레

성에 집착하는 인간들, 도덕적 한계를 뛰어 넘는 거침없이 흐르는 뒤틀린 선과 표현은 생전에도 논란이 많았으나 죽어서도 끊임없이 논란되어지고 있는 화가이다. 그는 3천여 점에 이즈는 드로잉과 약 3백 점에 이르는 회화를 남겼다. 시대의 불안과 실레 자신의 내면적인 고독, 욕망, 혼란이 뒤섞인 작품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의 삶을 투영하기에 공감대를 얻고 있다.

실레는 열여섯 살에 빈 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가지만, 그곳의 교육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되어 금방 그만두었다. 미술 아카데미를 중퇴한 실레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거울 이였다. 이사할 때마다 들고 다녔다는 이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을 이모저모 꼼꼼히 뜯어보면서 자화상을 끊임없이 그려 댔다. 실레가 그린 자화상의 대부분은 누드이다. 만족스럽다거나 느긋한 표정보다는 초조하고 겁에 질려 고통에 찬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모델은 화가인 실레의 내면을 폭로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모델의 화가와 일치될 경우 시선의 책임은 더욱 커져 기묘한 상승효과를 낳게 되고, 주체와 객체의 알력 사이에서 나르시시즘이 시작된다. 실레의 자화상을 마주 보고 서있으면 발끝에서부터 불안이 몸속을 침투해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살아가는 일에는 더할 나위 없이 무기력함에, 극도의 자존심과 나약함을 가졌으면서도 바로 그 때문에 꿋꿋하고 인간 실레. 실레의 자화상을 대하면 자기 자신과 그림 속에서 마주치게 된다.

에곤 실레 <자화상>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 

구스타프 클림트의 친구이자 피후견인이었던 에곤 실레는 클림트의 표현주의적인 선들을 더욱 발전시켜 공포와 불안에 떠는 인간의 육체를 묘사하고,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주제로 다루었다. 클림트의 아르 누보 양식과 소재의 영향은 1909년까지의 실레의 작품에서 현저히 보인다. 스승의 우아하고 장식적인 형상을 떠나서, 실레 자신의 표현적인 스타일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10년경에 이르러서였다. 에곤 실레가 비록 지명도에서는 클림트의 그늘에 가려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접해 본 사람이라면 그 강렬한 인상을 결코 잊지 못하게 된다. 클림트의 선이 부드러우며 녹아들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실레의 선은 날카롭고 강렬하다. 두 사람 다 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클림트는 풍부한 장식으로 포장했다면, 실레는 생략을 통해 적나라한 자태를 포착하려 했다. 똑같이 인물이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클림트가 한결같이 타인, 특히 여성을 그렸다면 실레는 자화상적인 짧은 생애의 주제로 작업했다.

에곤 실레의 그림 속의 인물들에서 역동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손동작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그려 내는 인물은 남자건 여자건 한결같이 침울한 공기에 둘러싸여 있다. 행위와 방심 사이에서 정지해 있으면서 어떠한 배경도 생략한 채 단지 필요한 것만을 드러내고 있다. 모든 작품은 화가의 내면을 기록한 것이다. 

 

크림트와 실레의 <다나에>를 비교해 보자. 실레의 <다나에>는 클림트와는 반대로 엎드린 자세의 벌거벗은 여인이다.

실레에게서는 클림트의 다나에가 자아내는 관능적인 표정은 없다. 즉 동일 주체를 답습한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실레의 작품은 클림트에게 다가가려 하면서도 사실은 확실하게 상대와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크림트의 그림이 황금빛으로 찬란한 장식이 있다면 실레는 거칠고도 서글픈 날카로운 시선이 어느새 우리 안에서 공명한다.

에곤 실레 <다나에>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